수요에스라강단
여러분 제일 가까이에 누가 있습니까?
ㅊ
오랫동안 양을 치던 목자가 한 이야기입니다. 자기가 양을 치고 있던 이웃의 목장에 어느 날 밤 들개 두 마리가 습격하여 하룻밤 사이에 무려 292마리의 양을 물어 죽였다고 합니다.
양은 아무 힘이 없습니다. 거기다 양들은 대단히 소심하고 겁이 많습니다. 맹수의 소리가 들리든지 혹은 다른 놀랄 일이 생기면 한참 동안 잠을 자지 못합니다. 토끼 한 마리가 뛰어들어도 양들은 혼비백산하고 도망간답니다.
양들은 스스로 지킬 수단이 전혀 없습니다. 기껏해야 도망가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양들이 도망가 봐야 얼마나 도망가겠습니까? 워낙 느리기 때문에 금방 잡히고 맙니다. 그리고 양들은 유약하여 새끼를 가졌을 때 크게 놀라면 조산하거나 유산하는 일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성실한 목자들은 양의 이런 습성들 그리고 체질들을 알고 철저하게 대비합니다. 늘 막대기(나 요즘은 총)을 소지하여 위험한 순간에 쓸 수 있도록 대비하고 양치기 개들을 훈련시킵니다. 목장에서 조그마한 소리만 나도 목동들은 한밤중이라도 뛰쳐나갑니다. 놀라운 것은 맹수 때문에 놀라거나 두려워서 잠을 자지 못하던 양들이 목자가 나타나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잘 잔다는 것입니다. 양들은 목자만 있으면 안심합니다. 목동만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목동들은 긴 지팡이를 들고 다닙니다. 나무나 바위에 가려서 양들이 목동을 못 볼 때도 목동의 지팡이 끝만 보아도 양들은 안심합니다.
이런 것을 잘 알고 있던 다윗이 노래한 것이 시편 23편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라는 5절의 말씀은 목동이 지켜주고 있는 한 맹수들이 조금도 두렵지 않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또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지켜주고 계시다는 것을 믿는 한 세상의 어떤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딸들 그리고 그들의 아들 딸들을 하나님께서 지키신다는 것을 믿는 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람들도 양 못지않게 겁이 많고 두려움이 많습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다들 어느 정도 두려움이 있습니다. 두려움이 심한 경우 정신질환자가 되기도 합니다. 두려움으로부터 생겨나는 정신질환자들은 환경이, 상황이 두려울 만한 일들이 많은지 아닌지가 아니라 그것을 이길만한 내 방어벽이 튼튼한지 아닌지에 달려있습니다. 아무리 두려운 일이라도 방어벽만 튼튼하면 정신질환에 걸리지 않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방어벽이 약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내 방어벽이 튼튼한가는 내가 얼마나 담대한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구석’이 큰지 아닌지에 달려있습니다. 믿을 만한, 많은 능력이 있는 존재가 곁에 있으면 훨씬 덜 두려워합니다. 무엇보다도 최고 능력의 하나님, 이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자기의 의지가 되고 자기의 힘이 되는 사람은 아무리 두려운 일이 있어도 겁나지 않습니다.
시편 46편을 노래한 사람이 이것을 제대로 알았습니다. 시편 46편 1절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시46:1-3)
하나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피난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피할 곳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 신자들은 또 하나의 커다란 복을 받았습니다. 제일 큰 복은 구원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이렇게 믿을만한 너무도 큰 구석, 의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신자들에게는 방패가 있고 ‘비빌’ 언덕이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성경에서 형통한 사람 중 제1번입니다. 모세가 죽고 나자 여호수아는 겁이 많이 났습니다. 속된 말로 크게 쫄아 있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내가 모세와 함께 있으면서 모세로 하여금 모든 일이 형통하게 한 것처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너를 형통하게 해주겠다.’(수 1장)
여호수아는 이 하나님 말씀을 전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한평생 이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는 길은 한평생 막히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을 알았고 전적으로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떻게 되는지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었기에 여호수아는 한평생 형통한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양에게는 많은 해충이 있습니다. 종류가 참 많습니다. 코파리, 날파리, 쇠파리, 진드기가 있고, 요들파리, 뒷발파리, 사슴파리, 각다귀 모기 등 종류도 많습니다. 거기다 몸을 파고드는 벌레들도 있습니다. 진드기, 벼룩이 그것입니다. 털 속 깊숙한 곳에 파고들어서 양을 괴롭힙니다.
파리가 사람이나 동물에게 달려드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거의 코 쪽으로 달려듭니다. 코에는 항상 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코에 축축한 점막이 있는데 거기에 알을 낳으려고 합니다. 파리들이 거기서 알을 낳으면 2~3일이 지나면 가느다란 유충이 됩니다. 이 벌레가 콧속에서 자라나서 머릿속으로 들어갑니다. 나중에는 뇌 속에 들어가 뇌를 뜯어먹게 됩니다. 머리에 염증이 생겨나고 심한 통증이 생깁니다.
양들은 벌레가 몸속에 들어가면 괴로워서 몸부림을 칩니다. ‘미친 양’이란 이런 경우입니다. 머리를 흔들어대고 머리를 땅에 문지르고 땅바닥에서 구릅니다. 바위나 나무 등에 몸을 부딪칩니다. 괴롭기 때문입니다. 심한 경우에는 양들이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을 괴롭히는 수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엇이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양들은 본능적으로 압니다. 그래서 두려워하며 파리 등이 달려들지 못하도록 온갖 애를 다 씁니다. 필사적으로 몸을 흔들어대고 여기저기 도망갑니다. 경험이 많은 목동들은 양이 왜 그렇게 하는지 안다고 합니다.
양은 털은 길지만 다리가 짧습니다. 꼬리는 얼마 길지 않기 때문에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양들이 벌레들로부터 피할 수 있는 길, 혹시라도 그런 벌레가 생겼을 때 또 벌레들이 몸속에 들어갔을 때 해방되는 길은 단 하나 모든 것을 잘 아는 목동들에게 의지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목자들은 그것을 알고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살충제를 물에 넣어 양들을 목욕시키면 그렇게 힘들어하던 양들이 평안을 찾고 행복해합니다. 또 목동들은 그런 일의 예방 차원에서 양의 머리와 얼굴에 일일이 기름을 바릅니다. 아마인유나 솔파 같은 기름을 바릅니다. 기름을 발라두면 파리들이 달려들지 않습니다. 5절에서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양들에게 기름을 발라주면 그렇게 평안해 하는 것을 다윗은 보았습니다.
인간이 그렇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자기를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 자녀들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지킬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가까이 있어서도 지키지 못하는데 멀리 유학 보낸 자녀들, 군대 보낸 자녀들, 이미 결혼시킨 자녀들을 부모가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얼마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아주 어린 아이든지 한창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이든지 다 성장하고 출가한 자녀들이든지 간에, 또 어떤 상황이든 간에 하나님은 얼마든지 지켜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더 행복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사람들과 전적으로 다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진실로 나의 목자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 그 예수님께서 성령님으로 나와 늘 함께하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정말로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
1. 양은 “가장 가까이”에 목자의 지팡이가 있어서 살 수 있었습니다. 나는, 마음 “가장 가까이”에 무엇을 두고 살아가고 있는지 (걱정인지, 하나님인지) 깊이 생각해봅시다.
2. 나를 오래도록 괴롭혀 온 것 (두려움, 염려, 상처 등)을 주님께 전적으로 내어드리지 못하고 혼자 씨름하고 있는 것이 있나요? 목자이신 주님께 내어드리기 위해서는 어떤 결단이 필요한지 나누어봅시다.
3.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의 말씀 붙들고 힘을 얻었던 적이 있나요? 그렇게 살아가면서 "비빌 언덕"이 되어준 말씀이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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