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에스라강단
진정한 기독교신자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
요한복음 14:16~18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의 삶이란 선하게 사는 것이다, 정의롭게 사는 것이다, 바르게 사는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말입니다.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독교인들만의 특유한 삶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 가운데 그렇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특히 더 선하게, 더 바르게, 더 정의롭게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그렇게 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 신약성경 전체에서 말씀하시는 바가 바로 그것입니다. 또 그렇게 살면 삶의 보람이 있습니다. 즐거움도 있고 기쁨도 있습니다. 삶의 의미도 찾을 수 있습니다. 거기다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살면 나중에 심판대에서 주님을 만났을 때 칭찬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가지고 계시는 계획은 그 정도가 아닙니다. 세상 사람보다 조금 더 바르게 살고 따라서 거기에서 오는 어느 정도의 삶의 즐거움, 의미, 보람, 기쁨을 훨씬 뛰어넘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인들에게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서 신자들을 언제 어디서나 지키시고 모든 것을 챙기시는 것 이것이 기독교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고 뜻입니다.
신자들은 절대로 혼자가 아닙니다. 기독교 신자들은 자기의 힘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도움을 요청하면 주님께서 뛰어오십니다. 때로는 따로 요청하지 않아도 불꽃 같은 눈으로 쳐다보고 계시다가 순간적으로 뛰어오십니다. 나의 노력과 더불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기독교 신자의 삶입니다.
현실의 삶에서 기독교 신자들은 성령님과 동행하며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령님은 어떤 존재인지 아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관념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이것은 신자들은 분명하게 알아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령님은 관념적인 존재, 추상적인 존재 혹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설정한 존재가 아닙니다. 성령님은 처음부터 존재하신 하나님이시며 지, 정, 의의 인격을 가지고 계신 인격체입니다.
성령님은 지성을 소유하시며 ‘생각을 하시는’ 존재입니다. 도와달라고 요청한다고 아무 생각없이 그냥 다 들어주시는 분이 아니라, 도와주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 어떻게 도와주는 것이 좋은지까지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신자들이 주님을 생각할 때 이 부분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의지가 있는 존재이십니다. 성령님은 의지를 가지시고 사람에 따라서 또 지역과 환경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역사하십니다. ‘생각이 있는’ 육신의 부모와 같습니다. 자식들이 요청한다고 그냥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생각과 계획을 가진 부모가 자식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방법으로 챙기는 것처럼 성령님은 당신의 의지로 당신의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챙기십니다.
또한 성령님은 감정을 지니신 분입니다. 성령님도 슬퍼하시기도, 기뻐하시기도, 섭섭해하기도 하시고 감격하시기도 합니다. 그것은 주로 당신의 사람들 때문입니다. 당신의 사람들이 바로 하면 좋아하시고 잘못하면 슬퍼하시고 마음 무거워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자기 때문에 성령님이 그러하신 것을 알지 못합니다.
잘 기억할 것은 성령님이 마음 아프시고 마음 무거우시면 하나님의 사람들 또한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무거워지고 힘들어집니다. 그 까닭은 성령님이 하나님의 사람들 ‘속’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나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무언가 어둡고 마음이 무거울 때는 이런 까닭일 수가 많습니다. 그럴 때에는 얼른 내가 무언가 성령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무거우시게 한 것이 없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신자들을 도우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령님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당신의 사람들을 도우시는 대표적인 몇 가지를 보겠습니다.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선한 일을 할 능력도 주십니다. 성령님이 충만하게 되면 선한 일을 하고 싶어지고 그런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할 능력, 여건도 주십니다.
또 성령님은 단신의 사람들을 유혹에 빠지지 않게 애를 쓰십니다. 발람이 잘못된 길을 가려고 했을 때 그 앞을 막으시기도 심지어 나귀의 입을 열어 책망하기도 하셨습니다.
또 당신의 사람들이 절망에 빠지려고 할 때, 포기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겼을 때 갖가지 방법으로 성령님께서 도우십니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길을 열어주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당신의 사람들을 아름답게 변하게 하십니다. 악한 사람을 선한 사람으로 변하게 하시고 저급하거나 품격이 모자랄 때 품격과 품위를 부어주시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모신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성령님이 오십니다. 자신이 인식하든지 못하든지 간에 예수님을 내 주님으로 모신 사람에게는 성령님이 오십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신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 속에 성령님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계신 신자라고 해서 모두가 성령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님이 조금만 일하십니다. 또 어떤 때는 성령님이 돕고 싶으시지만 돕지 못하십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님이 강력하게 역사하시고 도우십니다.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성령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어떻게 하면 성령 충만한 신앙인의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실제적인 몇 가지를 나눕니다.
먼저,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신다는 것을 아는 것, 의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 속에 성령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그 성령님과 자주 교통하는 것입니다. 신자 속에 계시는 성령님은 내가 바라는 것보다도 훨씬 더 나와 교통하기를 원하시고 또 돕기를 원하십니다. 한쪽 구석 귀퉁이가 아니라 나의 가슴 나의 인생 한가운데에서 힘 있게 역사하시기 원하십니다. 이것을 알고 성령님과 수시로 교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 성령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한 일’을 이루실 것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령님은 선하셔서 악한 것을 보고 계시지 못합니다. 우리의 악한 것을 선한 것으로 바꾸기 위한 모든 노력을 하십니다. 정히 바뀌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제거’해 버리기도 하십니다. 그것은 외부로 나타나는 악한 것뿐만이 아니라 신자 속의 악한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성령님께서 나에게 바라시는 바가 무엇인지 속히 알고 그것에 순순히 따라가는 것이 좋습니다. 성령님의 원하심을 따르지 않으면 바깥에 버려져 밟힐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소금 가르침’이 그 대표적인 말씀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성령 충만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자신을 성령님의 지배 아래 두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내 가슴, 내 영혼에 가득 채우는 것, 성령님의 지배 속으로 온전히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지배 속에 온전히 들어가는 것은 술 취하는 것과 흡사합니다. 성경도 그것을 말씀하십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진정한 기독교 신자의 삶은 어떤 것인가? 이런 노력, 저런 애씀보다 먼저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한 것, 이것이 진정한 기독교인의 삶입니다. ♥
1. 위 내용에서 성령님은 어떤 분이라고 설명하고 있는지 정리해봅시다.
2. 내 인생에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영역은 무엇인지 나눠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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