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에스라강단

    「구역 나눔」 수요에스라강단 357호 - 이것만큼은 ‘절대’라는 것이 있습니까? (창세기 43:1-14)
    2026-06-10 10:45:24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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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만큼은 절대라는 것이 있습니까?

    창세기 43:1~14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상실에 대한 아픔, 두려움이 있습니다. 상실의 두려움이 야곱에게도 있었습니다. 야곱은 형에게 아주 못되게 했습니다. 형과 아버지를 속여서 형이 받을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결국은 쫓겨나게 됩니다. 도망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 멀리 외삼촌댁으로 피신했습니다. 정든 집, 정든 고향, 사랑하는 부모를 떠나야 하는 상실의 아픔을 야곱은 겪었습니다. 많은 세월이 지나 형편이 잘 풀렸습니다. 네 명의 아내까지 있었지만 그 네 명의 아내 중 하필이면 그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잃어버리는 상실의 아픔을 또 겪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사랑하는 아들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을 잃어버리는 최악의 상실을 다시 겪게 됩니다. 이 상처, 이 아픔이 야곱 속에 깊이 자리 잡게 됩니다.

     

    죽은 아들 요셉을 가슴에 묻고 산 지 20여 년이 되었습니다. 야곱이 살던 가나안에 양식이 없어서 온 식구가 굶을 지경이 됩니다. 그러던 중 이집트에는 곡식이 넉넉하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야곱이 곡식을 구해오라고 열 아들을 이집트로 보냈습니다. 곡식을 구하러 갔던 야곱의 아들들이 이집트에서 간첩으로 몰렸습니다. 그들 중 하나를 인질로 두고 결백을 증명하려면 열두 번째 아들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는 지시를 받게 됩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돌아와서 야곱에게 그 사실을 말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베냐민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보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다시는 더 이상의 상실을 겪지 않겠다,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것이 야곱의 심정이었습니다.

    절대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이것만은 절대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심정은 이해가 됩니다만 그러나 절대라는 인간의 말이 하나님 앞에서 통하겠습니까? 인간 앞에서라면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하시기로 작정하신 일이라면 인간의 절대는 하나님의 절대앞에서 설 자리를 찾지 못합니다.

     

    날이 지나갑니다. 야곱의 집안사람들이 못 먹는 날이 길어졌습니다. 굶는 것도 한계에 이릅니다. 굳게 버티던 야곱이 어쩔 수 없이 드디어 항복합니다. ‘막내 베냐민을 데리고 가거라, 이집트 총리에게 드릴 예물도 준비하라, 곡식값도 두 배 준비하라그 말을 하면서 야곱은 자기 생애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말을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14)

    드디어 야곱이 항복을 했습니다. 사람에게 항복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항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겠다면 누가 하나님을 이길 수 있는가?’

    하나님께 항복입니다. ‘항복이것이 사람을 살립니다. 나도 살리고 너도 살리고 모두를 살립니다.

     

    큰 일이 있을 때, 가슴 아픈 일이 있을 때, 너무도 두려운 일이 있을 때 그것이 인간의 일인지 혹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지 먼저 보아야 합니다. 인간의 일이라면, 세상의 일이라면 애를 써보기도 해야 합니다. 힘도 써봐야 하고 발버둥도 쳐봐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그 어떤 것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빨리 두 손 드는 것이 낫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막내 베냐민을 데리고 이집트로 갔습니다. 총리를 만났습니다. 의외로 넘치는 환대를 받았습니다. ‘발 씻을 물도 대접받았습니다. 인질로 잡혔던 시므온도 석방되었습니다. 잃어버릴까 걱정 염려 두려워하던 베냐민은 이집트 총리에게 다섯 배의 대접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이집트 총리가 자기가 요셉이라고 자신의 정체를 밝혔습니다.

    믿을 수 없었습니다. 자기들로서는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세계 최강국 이집트 총리가 자기네 동생이라니 도무지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이집트 총리 요셉이, 아직 흉년이 5년 더 남았으니 속히 아버지 모시고 이집트로 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차를 준비했습니다. 그야말로 황금마차를 준비했습니다.

    이 일을 전해 들은 야곱은 자기 귀를 의심했습니다. 요셉이 보낸 마차를 보고서야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이십 수년간 맺혔던 한이 다 풀렸습니다.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때 야곱은 틀림없이 생각했을 겁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 베냐민을 보낼 걸 왜 바보같이 그랬던가? 내가 베냐민을 제때 보내기만 했다면 그만큼 더 빨리 요셉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그동안 밤잠 자지 않은 날, 잠 못 자고 뒤척이던 날, 가슴 속으로 통곡하던 날이 얼마였던가? 시므온이 감옥 속에서 그만큼 고생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어린 손주들이 못 먹어서 굶주리는 일이 적었을 텐데

     

    야곱이 왜 진즉 베냐민을 보내지 못했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믿노라 하면서도 진짜 믿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능력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도 이 일에는 별도리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얼른 하나님께 맡길 줄 알아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고 난 후 결과가 나오면 그것이 어떤 결과이든 간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항상 옳습니다. 지금 당장은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항상 옳습니다. 로마서 8장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여러분들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당하는일이 있다면 그것은 세상에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잃어버림을 당했다면, 상실을 당했다면 그 잃어버림, 상실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누구에게 버림당했다고 생각될 때 여러분이 모든 노력을 다했음에도 나온 결과라면 그것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동안 야곱은 버티고 또 버티었습니다. 그러다가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자기뿐만 아니라 어린 손주들까지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더이상 견디지 못하게 되었을 때 어쩔 수 없이 포기했습니다.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얼마나 미련합니까? 얼마나 불신앙적인 모습입니까?

    야곱이 신앙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자기로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그 고생을 했습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절대로 이것만큼은 놓지 못하겠다는 것이 있습니까? 절대 놓을 수,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까?

    내가 절대로 놓칠 수 없는 것, 내가 특별히 사랑하는 것과 이별하고 결별하는 것.. 진정한 자유는 거기서 출발합니다.

     

    잃어버리면, 떠나보내면 고독하면 아픕니다. 힘듭니다.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과 진정한 만남이 생깁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진정한 만남, 진솔한 만남이 있을 때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가 해결됩니다.

     

    야곱이 베냐민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낸 것에는 중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단지 베냐민만 떠나보낸 것이 아니라 자기 모든 집착을 떠나보낸 것입니다. 야곱이 마지막 남은 베냐민을 떠나보기로 한 결단은 야곱의 고통이 아니라 일생 최고의 결단이었습니다. 야곱이 베냐민을 보내기로 결정한 그 순간, 야곱의 일생에 있어서 모든 훈련, 모든 시련이 종결되었습니다.

     

    차라리 일찌감치 놓아버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뺏기기 전에 놓아버리십시오. 여러분의 손에서 놓고 하나님의 손에 맡기십시오. 하나님께 던지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하는 것보다 몇 배, 몇천 배 더 멋지고 아름답게 만드십니다.

     

    [생각해 봅시다]

    1. 지금 나에게 "이것만큼은 절대 놓을 수 없다" 싶은 것이 있나요? 무엇이고, 왜 그렇게 붙들게 될까요?

    2. 내가 그것을 못 놓는 마음 밑에는 하나님에 대한 어떤 두려움이나 불신이 있을까요?

    3. 전에 무언가를 하나님께 떠나보내고 맡겨 드렸던 경험이 있나요? 그 후에 어떤 일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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