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에스라강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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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장이 무너지고 가슴이 찢어질 것 같고, 분통 터지고 원통할 때 기억할 말씀
욥기 1:13~22
성경은 욥을 가리켜서 온전하고 정직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라고 매우 칭찬합니다. 그리고 욥은 복이 많았습니다. 자식 복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대단한 부자였습니다.
이처럼 욥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느 날 하나님 곁에 온 사탄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어디 갔다 왔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에 사탄은 세상 여기저기 돌아서 왔다고 말했습니다. 이 정도에서 끝냈으면 좋았을 텐데 하나님이 욥의 말을 꺼냈습니다.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욥 2:3)
좋게 말할 줄 모르고 좋게 볼 줄 모르는 사탄이 하나님의 그 말에, 그것은 하나님께서 욥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이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빼앗으면 욥은 당장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온갖 못된 말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만 두셨으면 좋았을 텐데 사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좋다, 네 맘대로 한번 해 봐라, 다만 욥의 몸에만은 손대지 말라.’
하나님의 이 허락을 받은 사탄은 신이 났습니다.
사탄이 첫 번째 욥을 쳤습니다. 하인이 새파랗게 질려서, 강도들이 쳐들어와서 소와 나귀들을 다 빼앗고 치던 종들을 다 죽였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두 번째 하인이,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서 양과 양을 치던 종들이 다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 번째 하인이 갈대아 강도가 세 무리나 쳐들어와서 낙타들을 다 빼앗아 가고 낙타를 치던 종들을 다 죽였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네 번째 하인이 쫓아왔습니다. 자녀들이 다 모여 식사를 하고 있는데 태풍이 불어와서 집이 무너져서 자녀들 열 명이 다 한꺼번에 참변을 당하고 말았다는 보고를 하였습니다. 해도 너무했습니다.
이 참담한 순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사람, 바른 사람 욥은 이런 경우에 어떻게 대처했는지는 오늘 이 시대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의 커다란 가르침이 있습니다.
욥은 그 비통한 소식을 접하고 옷을 찢었습니다. 그리고 머리털을 다 밀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 슬프고 비통한 소식에 결코 누구를 원망하거나 누구에게 탓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욥이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예배드렸다는 말씀을 직역하면 엎드려 절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입니다.’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욥이 고백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21)
이제는 그것을 뛰어넘어서 적극적인 자세로 하나님을 대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욥의 그 찬양은 ‘나는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을 허락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까닭을 알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분명하게 아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옳으시다는 것입니다.’라는 말입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 때, 원통하고 분노가 가득한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을 원망하거나 탓을 돌리는 것은 결코 슬픔이나 비극 그리고 분노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도리어 분노와 슬픔 그리고 고통을 더 키웁니다. 욥은 이 일에 대해서 승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또 다시 사탄에게 욥의 말을 꺼내십니다,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2:3)
사탄이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물러갈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탄은 절대로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어떤 존재라는 것을 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이해가 안 됩니다. 사탄이 말합니다, ‘몸이 성하니까 그렇지 병들고 힘들면 아무리 욥이라도 절대로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고 등을 돌리고 떠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욕할 것입니다.’
사탄은 신이 났습니다. 이번에야말로 틀림없이 이긴다고 필사적으로 욥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사탄은 욥을 보자마자 욥의 몸에다 독한 병을 뒤집어씌웁니다.
이런 때에 언제나 진짜 문제는 사람입니다. 욥이 가려워 견디지 못하고 온몸을 기왓장으로 퍽퍽 긁고 있는데 욥의 아내가 나타나서 욥의 마음까지 긁어버렸습니다.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2:9)
이것이 사탄의 실체입니다. 이때의 욥의 아내는 사탄의 도구이고 이것이 바로 사탄입니다. 끝까지 남아서 남편을 지켜주고 남편을 이해하고 격려해야 할 아내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합니까? 이것이 바로 사탄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대단한 것은 욥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잃고 슬픔에 잠겨있으면서도 끝까지 굳세게 믿음을 지켰습니다. 다시 하나님께 승리를 안겨드렸습니다.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라니라’(2:10)
욥이 입을 잘 지켰습니다. 입을 잘 지키면 우선 반은 승리하는 것입니다.
이제 욥의 완전한 승리로 끝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사탄은 그렇게 물러가지 않습니다. 끝난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욥의 친구들이 찾아와서 욥의 그 처참한 모습을 보고 비통해했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참 잘했습니다. 특히 잘한 것은 욥과 함께 땅바닥에 주저앉아 밤낮 칠 일 동안 욥과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다 욥의 친구들이 더 잘한 것은 칠 일 동안 한마디 말도 안 한 것입니다. 이것이 최고의 위로입니다.
그런데 칠 일이 지나고 난 뒤 그만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욥이 입을 열고 만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입을 안 열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입을 열면 자기가 더 힘들어집니다. 그것이 자기를 괴롭히고 더 슬프게 만들고 주변을 시끄럽게 하고 가정을 어렵게 만듭니다.
문제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욥이 입을 열자 욥의 그 말에 대해서 지금까지 참고 있던 친구들도 말하기 시작합니다. 욥이 말하고 친구들이 말하고 또 욥이 말하고 친구들이 말하면서 끊임없이 말의 공방이 계속되었습니다. 언제 이 공방이 끝날지 모를 것 같고 싸우다 끝날 것만 같은 이럴 때 하나님께서 드디어 등장하셨습니다. 욥을 향해서 무섭게 야단치셨습니다. 한 마디로 ‘욥, 너 왜 그렇게 말이 많으냐? 내가 너 당한 슬픔은 안다. 그렇지만 그런 슬픔을 당했다고 왜 그렇게 말이 많고 무엇을 안다고 그렇게 떠들고 다니느냐?’
욥과 친구들의 논쟁에 하나님께서 욥의 친구들에게 손을 들어주셔서 판정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최종 하나님의 판정은 그것이 아니라 정반대였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욥보다 더 잘못했다고 마지막 판정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욥의 친구들이 욥보다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그들이 더 잘하지는 못했다고 할지라도 욥보다 더 잘못한 것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무섭게 야단치시고 난 뒤 욥의 친구들에게는 욥보다 더 잘못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답입니다. 이 답은 머리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가슴으로 느낄 수만 있습니다. 억장이 무너지고 나라가 뒤집어질 것 같은 일에, 여러분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슬픈 일이 있을 때, 가슴 아픈 일이 있고 분통터지고 원통한 일이 있을 때 기억하실 말씀이 있습니다. ‘주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라는 스바냐 1장 7절의 말씀입니다. ♥
1. 예상치 못한 고난에 직면했을 때, 나는 욥처럼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기 위해 어떤 마음을 준비해야할까요?
2. 힘든 시기에 문제에 반응하는 나의 말과 행동은 주변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미칩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하나님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3. 고난을 통해 나는 하나님께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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