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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부모를 공경하라 (에베소서 6:1-3)
    2024-06-07 10:09:16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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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년을 지나는 한 아버지가 쓴 책이 있습니다. ‘내가 다시 아빠가 된다 면...’ 이 책에서 저자는 인생을 되돌아보니 후회가 되었던 것들이 참 많 았다고 합니다. 다시 부모가 된다면 하고 싶은 것들을 말하고 있는데,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첫째. 나는 아내를 더 사랑하고 싶다. 
     이제야 더 분명히 보이는 것은, 내가 자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그들의 엄마를 더 사랑하는 것이다. 자녀들이 그 사랑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둘째. 자녀들과 더 많이 웃을 것이다. 
      자녀를 선하게 마드는 최선의 방법은 그들과 함께 더 많이 웃는 것이다. 
    셋째, 자녀의 말에 더 경청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시 되돌아간다면 신문을 덮고 아이들이 하는 하찮은 말들을 더 많이 들어줄 것이다. 
    넷째, 더 정직해지고 싶다. 
      성공뿐 아니라, 실패의 때에도 정직하게 이야기 하고 싶다. 
    다섯 번째, 기도의 방향을 바꾸고 싶다. 
      내 자녀가 좋은 아이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내 자신이 바뀌게 해달라고 더 많이 기도할 것이다.
    여섯 번째,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다. 
      자녀의 질문에 일일이 다 대답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하늘과 땅에 가득찬 하나님을 자녀와 함께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다...

     한 평생 자식을 위해서 애를 쓰며 살았고,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해주었지만, 또 다시 아빠가 된다면 더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 것, 바로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2-30대에는 젊고 건강해서 병원을 찾지 않았고, 4-50대에는 자식들 먹이느라 바빠서 병원을 찾지 않았고, 70대가 된 지금은 ‘혹시 중병에 걸려 자식들에게 큰 해를 끼치는게 아닌가’하는 두려움에 병원을 찾지 못 하시는 분들이시며.. 위로는 부모님을 부양하는 동시에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희생했지만, 아래로는 자녀에게는 부양을 말할 수 없는 분들.. 자식들의 모든 실수와 아픔은 다 받아주시고 품어주셨으면서도, 노년의 일말이라도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은 그래서 항상 자녀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부모님은 우리의 입장에서도 귀한 분이시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도 귀합니다. 그래서 십계명중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첫 번째로 지켜야할 계명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하십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세상 모든 부모가 귀하고 관심의 대상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럼 자녀 된 우리가 어떻게 부모님을 공경해야 할까요?
     ‘공경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무겁게 대하다’, ‘귀하게 여기다’는 의미로, 하나님께 쓰일 때는 ‘영광을 돌리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우리가 좋은 일 뿐 아니라, 실패하고 낙심된 순간에 또다시 하나님께 나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래도 하나님이 내 인생에 중요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찾고, 그래도 또 하나님께 나오는 것... 이것이 하나님을 무게있게 대하는 것이고..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도 항상 부모님을 찾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찾고 몸으로 찾아뵈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서운한 것이 있어도 찾아뵙고, 설령 이제는 육신으로 나를 도울 힘이 없어도, 그러나 그분의 존재를 가벼이 여기지 않고 마음에 두는 것, 이것이 공경입니다.
      설령 부모님이 믿지 않는 신자일지라도, 설령 인간적으로는 부족점이 많은 부모라도, 때로는 부모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더라도, 성경은 자녀가 부모를 공경함에 있어서 부모의 어떠한 상태나 조건을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훌륭한 부모님만 공경하고, 존경받을 만한 부모님만, 무엇인가를 유산을 남긴 부모님만 공경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네 아버지와 어머니’이기에 공경하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원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자녀들은 부모님께 받은 상처로 부모가 밉고, 원망스럽고, 또 부모님의 실망스러운 모습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지 못한다고 생각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못할 원인을 부모에게서 찾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만약 부모님이 완전하고 완벽하면 자녀가 다 효자가 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보면 압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되시고, 완전하신 부모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불효자처럼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성경은 부모를 거역함이 말세의 특징이고,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의 모습이며, 근본적으로는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 결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면 교만하게 되고, 돈을 사랑하게 되고, 온갖 죄가 발생하는데..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죄가 ‘부모를 거역한 죄’입니다. 부모를 거역하고, 깨어진 관계를 방치하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 안 계셔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부모님을 내 삶에서 빼는 것은 부모님만 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함께 빼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같은 자들에게서 속히 돌아서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부모님도 마음에 두라하십니다. 


     그러면 부모님 공경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먼저 본문 6:1절에서 말씀 하십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이 곧 공경하는 길입니다. ‘순종’이라는 단어는 ‘밑에서 듣다’라는 말입니다. 말하는 상대보다 내 몸과 마음을 낮춰야 들을 수 있는 것이 순종입니다.

     왜 우리의 귀에 부모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을까요? 까닭은, 우리가 부모님보다 마음이 높아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들리지가 않고 순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순종하라’말씀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부모보다 낮추라는 뜻입니다. 내가 부모님 보다 더 많이 배웠어도, 설령 더 성공했어도, 더 잘났어도 착각하지 말고 부모님 앞에서는 우리의 마음을 낮추고 들으라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왜 하나님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을 중요하게 말씀하실까요? 그 이유는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부모를 통해서 순종을 가르쳐 주십니다. 부모님의 말씀이 틀린 것 같고 이해가 되지 않아 순종하지 못하겠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도 순종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말씀에는 부모님의 말보다 더 이해되지 않고, 믿을 수 없는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왕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하십니다. 사울왕은 짐승을 다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전쟁할 때 쓰면되고, 이것은 제사할 때 쓰면 되는데.. 왜 다 죽이라 하시는지..” 결국 그는 불순종합니다. 단순한 불순종이 아닙니다. 마음을 하나님보다 높이 둔 것입니다. 그러니 들리지 않고 순종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울의 실패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나으니라’

     ‘엄마와 아이의 대화’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아이가 엄마에게 와서 청구서를 놓고 갑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잔디깎은 대가로 5달라, 침대정리 1달라, 가게 심부름 50센트, 동생 돌봐준 값 25센트, 쓰레기 버린 것 등등 종합 14달라...” 아이는 너무 많은 일을 너무 싸게 청구했다며 기대감에 엄마를 바라보았습니다. 엄마는 그 청구서 뒷면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9달 동안 뱃속에서 너를 키운 값 공짜, 너의 장난감, 학비, 네의 옷, 음식들 모두 공짜. 네가 아플 때 잠을 설치며 옆에서 간호 해준 값 공짜, 수년간 너를 위해 눈물 흘린 값 공짜, 모든 사랑의 값은 공짜.”
      우리가 부모님께 순종하여 손해를 본다하여도, 그 값은 지금까지 우리가 받아왔던 사랑의 값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순종하다 손해보고 고생할 때, 오히려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는 빙긋이 웃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순종하라 명령했다면, 그 순종을 하나님이 받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부모님보다 마음을 낮추십시오. 그래야 부모님의 말씀이 들리고 순종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하는 방법은 부모님의 허물을 덮어드리는 것입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완벽한 부모도 없습니다. 그러나 완벽한 부모로 기억할 수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녀가 부모의 허물을 덮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당대 의인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노아는 완전한 의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까닭은 하나님이 그의 허물을 다 덮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실수를 가려주시고 좋은 것만 기억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의인으로 기억합니다. 

      하나님께 칭찬을 듣던 노아가 실수를 합니다. 술을 먹은 후 벌거벗은 채로 잠이 들었습니다. 이때 아들 함은 장막에서 벌거벗은 아버지의 수치를 봅니다. 그는 아버지를 부끄러워하고, ‘어떻게 아버지가 그럴수 있냐고..’ 그 사실을 밖에 나가 이야기 합니다. 그는 아버지의 실수, 아버지의 허물을 가려주지 못했습니다. 반면 다른 형제들인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상황을 알자마자 즉시 사태를 수습합니다. 혹시라도 아버지의 허물을 볼까봐 뒷걸음질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들의 옷으로 아버지의 허물을 가려줍니다. 후에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 이 두 형제를 통해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주었다는 것은 단순히 옷으로만 가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두 아들이 아버지의 실수를 용서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용서가 가장 많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바로 가정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세상에서는 그렇게 많은 용서가 필요 없습니다. 직장에서 그 정도 관계면 내가나가던지 상대방이 나가던지 합니다. 친구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안 만나면 됩니다.  그러나 가정을 그렇지 않습니다. 가정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를 가장 정확히 아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내 모습을 아내가 알고, 남편이 알고, 자녀들이 압니다. 아무리 밖에서는 흠이 없어 보여도 그래도 가족은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가정에 무엇보다 필요한 은혜가 있다면 바로 수 없는 용서입니다. 

      깨어진 가정이라고 해서 특별히 문제가 많은 것은 아닙니다. 용서의 차이입니다. 작은 일도 크게 번져 깨어지는 가정이 있고, 큰일도 작게 만드는 가정이 있습니다. 용서가 없다면 가정은 가정이 될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고쳐지지 않는 반복되는 죄가 있습니다. 그리고 남들은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죄도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죄가 그대로 다 폭로가 되면 여기 앉아있을 사람이 얼마되지 못할 것입니다. 저에게도 반복해서 넘어지는 죄가 있습니다. 기도해도 또 넘어지고, 또 넘어집니다. 
     그렇게 넘어지다 보면 기도의 자리가 무겁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그리워서 또다시 나아가면.. 하나님은 마치 내가 죄를 처음 고백한 것 같이 나를 대해주십니다. 통회하게 하시고, 그렇게 속으셨으면서 또 용서해 주십니다. 그럴 때마다 내게 생겨나는 힘이 있습니다. 바로 남을 바라보는 용서의 힘입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이유는 죄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날마다 나를 용서해주시고,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수백 수천번 용서하신 까닭은 우리에게도 누군가를 그렇게 용서해야할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우리의 본성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붙어있을 때에만 흘러오는 사랑입니다. 
      우리가족을 누구보다 사랑하기에 그 가정을 지키시고자 나에게 지속적으로 흘려 보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용서입니다. 이 용서가 부모님들에게 필요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자녀들에게 이 용서의 힘이 필요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주는 동시에 또한, 가장많은 상처를 주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많은 자녀들이 부모의 폭언과 폭력과, 부모의 외도와, 이혼으로 상처를 받고 자랍니다. 그 상처는 미움이 되고 증오가 됩니다.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미움도 그 상처도 사랑이 이깁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부모님이 들려주지 못한 사랑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살아난 가정’이라는 책에 소개된,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한 어머니가 쓴 글입니다. 

     아이가 백혈병 진단을 받는 순간부터 나는 삶의 의미를 상실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세상을 떠나던 날, 나는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을 치다가 입술이 터지고 온몸에 피멍이 들었습니다. 그때 내겐 이대로 한 줌의 재가 되어 아들 곁에 뿌려지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쯤에 언제 오셨는지 아버지가 내 앞에서 계셨습니다. 누워 있는 나를 일으키시고 나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이슬이 채 걷히기도 전에 친정집에 도착했습니다. 아버지는 나를 방에 들게 하고 잠시 나가시더니 약사발을 들고 돌아오셨습니다.
    "보약이다. 너 오면 먹이려고 밤새 달여 놓은 거여. 어여 마셔라."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고 어찌 보약을 먹으라는지 아버지가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나는 앞뒤 생각 않고 약사발을 거세게 밀어냈습니다. 약사발은 방바닥에 나뒹굴었습니다. 아버지는 버럭 역정을 내셨습니다. "왜 이러는 거여. 너도 니 아들 따라 죽을 거여. 니한테 그놈이 가슴 애리고 기막힌 자식이면 이 애비한테는 니가 그런 자식이란 말여. 이 애비 맘을 그렇게도 모르는 거여." 아버지의 목소리는 젖어 들고 있었습니다.

      '자식이 짊어진 고통의 무게만큼 당신도 함께 그 고통을겪고 계셨구나.' 나는 아버지 앞에서 오랫동안 목 놓아 울었습니다. 그날부터 나는 얼마간 잠을 잤는데 잠결에도 군불을 지피는 아버지의 손길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또 아버지는 몸도 가누지 못하는 나를 일으켜 벽에 기대어 앉혀 놓고 때마다 정성껏 달인 보약과 밥을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내 입에 밥술을 떠넘기실 때마다 주문을 외듯 똑같은 말을 중얼거리셨습니다. "너무 애달파 말거라. 세상에 사람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는겨. 자식 살리겠다고 얼마나 애간장이 탔겄냐. 얼른 세월이 흘러야 니 마음이 편해질 건디…." 아버지는 그렇게 슬픔 속으로만 빠져드는 나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설령 지금보이는 아버지의 모습이 어떨지는 몰라도, 그러나 부모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혹시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나 크신 분들이 계시다면 하나님의 위로와 용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들려주지 못한 사랑이 있음을 기억하여 사랑으로 용서가 되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부모님께 순종하고, 혹 부모님의 허물을 덮어주고, 부모님을 용서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를 땅에서 장수하게하고 잘 되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로써 네가 질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물론 생명이 길어지고, 더 성공하게 해주신다는 약속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얼마든지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다보면 생명이 내 목숨의 연장뿐아니라, 생명력의 확장임을 알수 있습니다. 나로 인하여 주변이 복을 받고, 관계가 화목하게 변하게는 것이 오히려 성경적인 복이고, 생명의 확장임을 알 수입니다. 

     부모와의 관계는 곧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부모에게 받을 유산이 없는 사람일수록, 부모의 덕을 볼게 없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순종은 더욱 복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칭찬을 들어가며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들은 이미 자기 상을 받았느니라’, 

     사람에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실 상급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부모 공경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부모님의 덕을 볼 사람이 없는, 어떤 것을 바라면서가 아니라 부모님을 순종하고 공경하는 사람..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대신 갚아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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