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초대
“현재를 살아가며 놓치지 말아야 할 것...”
마태복음 24:36-44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는 우리가 자주 들어본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바로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사람들을 향하여 경고한 말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곧 오신다.”라는 임박한 종말론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현재의 세상살이가 전부 사치였습니다.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곧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삶은 점점 게을러지고 일도 열심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게으르게 살아가던 사람들을 향해 날린 바울의 일침은 “일하기 싫은 자 먹지도 말라”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이런 잘못된 종말론이 미치는 폐해는 우리나라에도 있었습니다. 1992년 사이비 단체인 다미선교회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은 학교와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을 버리고 전 재산을 팔아서 헌금을 하고는 산으로 모였습니다. 이제 곧 종말이 오는데 직장 재산등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그 사람들은 곧 임박한 종말을 기다리며, 그들끼리 모여 밤새도록 찬송가를 부르며 종말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던 일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또한 1999년에는 세계 곳곳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하였고, 실제로도 삶과 생업을 포기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모두가 이제 곧 세상이 멸망한다는 잘못된 종말사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런 일들로 인해 종말을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이단이나 잘못된 신앙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사실 종말론 신앙은 우리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분명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반드시 그날은 있으니 깨어있으라 하십니다. 반드시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그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사이비종교의 모습으로 준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현실을 도피하는 삶이 아닙니다. 그날을 준비하는 바람직한 자세는 오히려 그날이 있기에 현실을 더욱더 믿음으로 꿋꿋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기독교 교리의 마침이자 완성입니다. ‘부활 - 승천 - 재림’으로 이어지는 주님의 약속은 이 땅을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큰 소망이고 큰 위로가 됩니다. 믿음으로 사는자들에게 그날은 결코 무섭고 두려운 날이 아닙니다.
혹시 어릴 적 이런 경험이 있으신지요? 동네 놀이터에서 놀다가 친구나 형들과 싸우거나 놀림을 받습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한데, 내 힘으로는 이길 수도 없고, 상황은 서럽고 눈물만 날 때, 그때 어머니나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르며 놀이터를 찾아옵니다. 그러면 그 부모님의 모습만 봐도 참았던 설움에 눈물이 주르륵 흐릅니다. 그리고 안심이 됩니다. 나를 놀리던 형들은 속된 말로 ‘다 죽은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오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오신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일들이 우리 삶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동안 믿음지키며 참았던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실 것입니다. 선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하다 손해 봤던 일들, 억울했던 일들, 참고 견뎠던 모든 수고와 눈물을 하나님이 갚아주실 것입니다. 그날이 없으면 우리가 믿음을 지킬 필요도 없습니다. 착하게 살 이유도 없고, 이기적으로 욕심을 따라 살면 됩니다. 그러나 그날이 있음을 알기에 현재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향하여 예수님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3년의 공생애가 끝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잠시 제자들을 떠나실 것인데,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종말에 대하여 들려주시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 요지는 이것입니다. “그때는 아무도 알 수 없으니 깨어 있으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현실을 도피하라는 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또 너무 현실에만 집착하며 살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을 망각한채 현실만 집중하며 사는데,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 유명한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자는 밭의 소출이 풍성했습니다. 그 곡식을 쌓아도 다 쌓아둘 수 없을 만큼의 풍성한 곡식을 거둡니다. 그리고 스스로 만족해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여러 해 쓸 곡식을 쌓아두었으니 이제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자” 그러나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그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이 비유의 핵심은 땅만 바라보고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하는 때에 찾아옵니다. 누구도 개인의 종말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급작스러운 사건이나 사고가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자연재해나 전쟁이나 질병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개인의 종말이든 혹은 역사적 종말이든 그 시기는 정말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때가 왔을 때 이 땅만 바라보고 살다가는 큰 낭패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현재의 삶을 살아가야 할까요?
먼저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소망을 가진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환경이나 상황이 전부라 생각하여 낙심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너무 먼 미래만 생각하며 현실의 문제와 상황을 도피하는 것도 아닙니다. 소망을 가진다는 것은 현실은 어려워도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은 하나님께 맡기고, 내게 주어진 현실을 최선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거짓과 유혹이 많은 세상에서 빛과 소금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도 힘든 일들이 많았지만, 현실의 문제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가난했었고, 박해가 있었고, 신앙때문에 손해 보는 것도 많았지만, 그것 때문에 주저앉아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집착하지 않았고, 이기적이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일하되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지 않고, 남의 유익을 구했습니다. 물질을 흩어 구제하였으며, 선한 삶을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꼭 죽음이후 뿐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하나님의 때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한 방법과 내가 원하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그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힘든 현실에 주저앉지 않고 현실을 살아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소망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듭니다.
이 소망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는 많은 문제들이 항상 있습니다. 가정, 자녀, 사업, 건강의 문제들이 자리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만 얽매여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문제들은 죽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이것만 지나가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하지만, 이 문제 넘어가면 다음의 문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에만 집중하다보면 계속 우울하고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간섭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현실의 문제에서도 너무 매여 있으면 안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문제 앞에서 염려하고 낙심하기 전에 먼저,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해 보십시오. 그리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은 하나님께 기도로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날의 염려는 그날에 족하다, 내일의 염려는 내일로 맡기라’ 그러다가 내일이 되어 또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면 그 또 내일로 맡기는 것입니다. 현실을 도피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내일에 대한 염려만 하다가 오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주저앉아있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으면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된다.’ 먼저 주어진 현실을 잘 살아간 다음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그날을 준비하는 삶의 자세는,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먼저는 ‘내가 예수님을 잘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그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보다 더 중요한 사명은 없습니다. 종말이 오기 전 우리가 깨어서 준비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요한복음 3:16~17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종말의 시기는 알 수 없습니다. 그때는 알 수 없지만, 그러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는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바로 예수님을 믿는 일입니다. 그날이 이르기 전에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는 자에게 구원을 선물로 허락하셨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우리 죄를 해결해 주실 유일한 분이심을 믿으십시오. 오직 예수님으로만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과 그분이 다시 오신다는 그 사실도 믿으십시오. 그리고 그분이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의 길과 해결책이라는 사실도 믿으십시오. 그리고 믿기 위해서 애를 써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정말 여러 가지 것들을 얻으려고 힘을 쓰고 애를 씁니다. 좋은 성적과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애쓰고, 취미를 즐기기 위해 돈도 쓰고 많은 시간도 씁니다. 또한 사랑하는 자녀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힘쓰고 애써야 할 것은, 예수님을 잘 믿기 위해 애를 쓰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싶은데 잘 안 믿겨 진다면 말씀을 자주 접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하도록 힘을 쓰고, 또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영과 소통하는 시간입니다. 때론 나의 필요를 아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마음의 솔직한 생각과 마음을 꺼내어 놓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에 믿음이 점점 생겨납니다. 또한 그리고 예배에 참여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예배는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 삶의 우선순위가 예배를 통하여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 모든 노력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믿음을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든 노력을 다해도 믿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수고와 애씀과 우리의 진심을 아시고 우리를 대하십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기를 원한다면 성령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이 없다면 예수님을 믿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내가 예수님이 믿어진다면, 이제는 그 사실을 전해야합니다.
우리의 말에는 지혜와 능력이 없을 수 있습니다. 지식도 부족하여 어떻게 전할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는 도구와 통로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여는 능력은 나에게 있지않고, 복음에 능력이 있습니다.
왜 우릭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요한복음 3:18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할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사실 하나님의 심판은 죽어서 받는게 아닙니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무시하며 사는 모든 순간과 선택들이 우리를 이미 심판으로 끌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삶, 하나님과 분리된 그 삶 자체가 곧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28절의 말씀을 보면 왜 이렇게 우리 삶에 고통과 다툼이 많은지 왜 이렇게 죄가 가득한지를 잘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자요...”
우리 삶의 모든 고통의 시작은 바로 하나님을 우리가 내쫓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해서, 내 정욕대로 살고 싶어서 하나님을 외면하고 무시했지만, 그 삶의 결과는 행복이 아니라 불행을 자처하는 일이 된 것입니다.
혹시 삶을 힘들어하시는 사람들이 주변에 계십니까? 물질로 인해, 자녀로 인해, 삶의 허무함으로 인해 고생하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알려줘야 합니다. 돈만 있으면 해결되는 게 아니고, 자녀가 잘되면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는 인생의 고통과 문제 속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뿐입니다.
여러분, 이 예수님을 전하십시오. 마음만 있으면 방법은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정말 귀한 일입니다. 이 일은 내 인생에서 내가 한 일 중 가장 귀하고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44-46절입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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