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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를 살아갈 때 필요한 것들...’  (창세기 23:1-13)
    2024-01-05 16:18:11
    관리자
    조회수   120

    새해를 살아갈 때 필요한 것들...’

     

    창세기 23: 1-13

     

    인생을 살아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방향성과 목적지입니다. 목적지가 분명해야 인생이라는 여행의 방향을 잘 설정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그냥 돈 잘 모으고, 잘 먹고, 잘 사는게 전부인 것처럼 보여도, 그러나 하나님은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을 정해놓으셨고, 그 마지막에는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이 있다고 하십니다.

    고후 5:9-10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2024년 새로운 복된 한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주어진 한 해의 시간을 살아갈 때, 우리의 목적지를 알아 바른 삶의 방향을 정하고 살아간다면, 지금의 인생의 시간 동안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함께하시는 복된 한 해가 될 뿐 아니라, 그날에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목적지를 분명하게 알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첫째,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의 삶이 나그네의 삶임을 기억해야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127세의 나이로 주어진 삶을 마쳤습니다. 이들은 정말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왔습니다. 때론 사라에게 부끄러운 모습도 많이 보였고, 고생 끝에 이삭을 얻었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별이 찾아옵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죽음을 한참동안이나 슬퍼하며 애통해합니다. 그리고 극도의 슬픔을 추스르고 사라를 매장할 굴을 얻기 위해 가나안 땅의 헷족속에게 나아가 땅을 구입하는 장면입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헷족속에 가서 자신의 신분을 밝힐 때 나그네라는 단어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4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나그네는 지나가는 사람을 뜻합니다. 나그네는 이방 땅에 머물러 쉬어가는 사람으로서 성경에서는 약자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자주 사용됩니다. 이들은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도, 수단도 방법도 없습니다. 그래서 낯선 땅에서 누군가의 배려와 도움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약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체성도 나그네라고 정의하시며, 잊지 말라고 하십니다. 레위기 2523의 말씀에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가나안땅을 주셔서 거기 거주하게 하셨으면서도,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류민’, 나그네로 부르시는 것일까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나그네는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지 않습니다. 본향이 있기에 본향을 바라며 지나가는 삶의 과정들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런 나그네의 정체성이 바로 이 땅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방식과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웃을 향한 배려가 나그네의 정체성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레위기 25:35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빈 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그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가난한 형제가 빈손으로 곁에 있을 때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도록 베풀어야 하며, 그들을 보호하라고 하나님께서 명하십니다. 왜냐하면 너희도 역시 나그네였는데 하나님이 돌봐준 것이었으니 그러니 너희도 나그네 된 이웃들을 배려하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의 삶이 이자 낼 형편이 되지 못하거든, 이자를 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비록 땅과 집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이스라엘 민족 역시 잠시 거류민으로 지내고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22:21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400년동안 학대받고 고생하며 나그네로 살았을 때를 기억하며, 다른 약자들을 학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이스라엘의 나그네 정체성이 바로 이웃을 대하는 태도가 됩니다. 반면 이렇게 나그네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혜택을 받는 수혜자들은 어떠했을까요? 큰 희망과 감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큰 희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자도 받지 않고, 저 사람들은 다른 민족과는 다르게 우리를 학대하지도 홀대하지도 않으니 참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사와 고마움은 다양한 신을 섬기는 시대속에서, 곧 이들이 믿고 섬기는 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관심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이 우릴 통해 받으시는 영광이고 찬양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살고 있지만, 나그네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지금의 집이 아무리 좋고, 아무리 편해도, 지금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떠날 때는 다 놓고 가야 합니다. 정말 잠시 빌려쓰고, 잠시 누리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너무나 많은 욕심과 집착과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에 빈손으로 왔지만, 지금 이렇게 좋은 집과 환경과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나그네 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이자 선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이 나그네였음을 기억하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음을 기억하라 하십니다. 그리고 보물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하십니다.

     

    이웃을 향한 배려, 이웃을 향한 사랑과 관심은 바로 우리가 나그네임을 아는 사람들, 우리에게는 더 좋은 본향이 있음을 아는 그 정체성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니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을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과 동행하십니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낮추어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면, 아브라함은 헷족속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4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앞에서 보았듯이 나그네는 그 땅의 사람들의 보호도움이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약자를 가리킵니다. 누군가로부터 도움이 절실한 상태의 사람들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즉 아브라함은 헷족속에게 스스로를 나그네라고 표현한 것은 나는 당신들의 도움이 없으면 안되는 존재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단어로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음을 주목해봐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지금 위치는 나그네가 맞지만, 그러나 아브라함의 삶을 살펴보면 그는 결코 약자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땅을 주장할만한 명분도 있었고, 그 땅을 차지할만한 힘도 있었습니다. 마음만 먹었다면 아브라함은 그 땅을 소유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땅의 주인이 이방인이 아니라 네가 될 것임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지금 아브라함이 헤브론지역의 헷족속에게 요구하고 있는 이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기로 한 땅이며 아브라함이 장차 소유하게 될 땅이었습니다. 게다가 아브라함은 그럴만한 군사력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집에서 훈련을 시킨 군사가 318명이나 있었는데, 실제로 이 군사들을 데리고 4개의 부족 연합을 무찌르고 조카 롯을 구할 만큼 대단한 군사들이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한 약속의 땅 코앞에 서 있었고, 또한 그 땅을 뺏을 만한 군사력도 지니고 있었지만, 자신은 그냥 그 땅을 지나가는 약한 자, 나그네로 여기며 정중하게 매장지 일부를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강자가 약자의 것을 마구 빼앗는 약탈과 전쟁이 난무하는 시대 속에서 이러한 아브라함의 행동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충분히 능력도 있고 명분도 있지만 힘으로써 그 땅을 자기의 것으로 취하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그들과 평화를 누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의 6 말씀을 보면 헷족속이 그런 아브라함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볼 수 있는 표현이 나옵니다.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 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좋은 것을 택하여’,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등의 단어들이 헷족속이 아브라함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헷족속이 고마웠던 것입니다. 강한 자가 힘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고, 친절과 겸손으로 자신들을 배려해주는 그 태도가 고마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비록 이방인이지만 헷족속에게 존경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헷족속의 예우를 받은 아브라함은 또 어떠했을까요?

    237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주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그들에게 몸을 굽히고 감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때 사용된 몸을 굽히다는 단어는 단순히 몸을 숙이는 정도가 아니라 무릎을 땅에 대고 엎드려 몸을 완전히 굽히는 자세를 말합니다. 때론 이 자세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 경배하며 기도할 때 취했던 자세이기도 했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헷족속을 배려할 때, 헷족속은 아브라함을 존중했고, 또 아브라함은 그들의 존중을 마음에 담아 진심으로 감사와 경의를 표한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어 최고의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이런 삶이 바로 아브라함의 모습이었습니다. 힘이 있지만 때론 그것을 절제할 줄 알고, 약자를 배려할 줄 아는 사람, 그래서 평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과 같이 살아가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충분히 권리를 주장하고 가지고 있는 직분과 힘을 사용할 수 있지만 평화를 위해, 상대방을 위해 포기할 줄 알고 자제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그리스도인들은 삶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막벨라 굴을 위해 은 400세겔을 주고 구입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주인은 그 굴을 그냥 거저 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제안을 거절하고 상당한 값을 치르고 그 밭을 구입합니다. 공짜로 준다는데 이를 거절한 이유가 무엇인지 본문에서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2318모든 헷족속이 보는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

     

    아브라함은 참 지혜로웠습니다. 지금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입니다. 굴의 주인이 그 굴을 공짜로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한세대가 흐르고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지게 될 것입니다. 나중에라도 이 굴의 소유권을 놓고 문젯거리가 되지 않도록 아브라함은 모든 이가 보는 앞에서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그들을 증인삼아 확정을 지었던 것입니다.

     

    이 본문과 비슷한 이야기가 다윗시대에도 있습니다. 다윗이 인구조사로 범죄 하여 백성들에게 전염병이 일어나 죽게 되었을 때 다윗은 오르난에게 찾아갑니다. 그리고 오르난에게 밭을 팔 것을 요구합니다. 그때 오르난이 다윗에게 번제물의 소, 곡식 떠는 기계, 소제물도 거저 드리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거절합니다. 그리고 그 합당한 값을 지불하고 밭을 삽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자신의 것은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는 예배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 그게 다윗이 드렸던 온전한 예배였습니다. 그렇게 합당한 것을 치를 때 온전한 예배가 되고, 온전한 소유가 됩니다.

     

    대가를 지불 할 때 온전히 내 것이 됩니다. 대가를 지불 할 때 그것에 대한 가치가 부여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귀하고 가치 있는 존재인 까닭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귀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에도 합당한 대가를 지불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무런 희생과 수고가 없는 예배를 드려서는 안 됩니다. 자신은 아무런 노력은 하지 않고 달라고만 하는 기도를 드려서는 안 됩니다. 이웃을 사랑할 마음도 없으면서, 용서하기 위해 어떤 대가도 지불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동행해 주시기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희생 없는 예배, 노력 없는 기도, 사랑의 실천이 없는 신앙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내 믿음이 아닙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의 수고와 애씀으로도 어느 정도 복을 쌓고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복, 사라지지 않고, 정말로 우리를 부요케하고 행복하게 하는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며,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합니다. 올 한 해를 살면서 우리가 나그네임을 잊지 않고, 약자를 배려하며 베풀며, 자신의 권리는 절제하며 책임은 더 감당하고, 또 신앙의 마땅한 대가를 지불하며, 그렇게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그날을 준비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한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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