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에스라강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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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만드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2:3~14
우리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본래 왕이시고 지금도 왕이십니다. 모든 세상, 모든 사람, 모든 일의 왕이십니다.
그 왕이 최고의 영광 나라 하늘나라를 떠나서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이 땅은 낮고 천하고 거기다 늘 싸우고 전쟁이 가득한 땅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땅, 어둠이 가득하고 위선이 가득하고 거짓이 가득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 오실 때에 주님은 왕의 모습이 아니라 가장 초라하고 누추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화려한 궁궐에서 태어나지도 못하시고, 왕으로 환영받지도 못하시고 허름한 여관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셨습니다. 겨우 가축들이 사는 마구간 그리고 가축들이 먹는 밥통인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야말로 우리 주님은 눈물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눈물의 왕으로 오신 주님은 태어나실 때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사시는 동안 끝까지 계속 눈물의 왕으로 사셨습니다. 사람들을 도와줄 때는 환영받으시는 듯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기들 원하는 대로 따라주지 않는다고 소원 들어주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등을 돌렸습니다. 심지어는 가장 사랑한다고 하던 제자, 그래서 가장 소중한 일까지 맡겼던 제자로부터 배신을 당했습니다. 그렇게 사랑한다고 따라다녔던 사람들, 그렇게 칭송하고 옷까지 벗어서 예수님 가시는 길에 깔아주고 나뭇잎을 베어서 깔아주던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는 소리까지 들으신 눈물의 세월을 사셨습니다. 죽음보다 더 힘든 수치를 당하셨고 모욕을 당하셨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셨고 끝내는 참혹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런 삶을 사신 것은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잘하려고 애를 쓰고 힘을 쓰다가 무언가 잘못되어서 그렇게 사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살기로 작정하시고 사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신이 그것을 작정하셨습니다. 환영받지 못할 정도가 아니라 배신당하고, 그렇게 사랑하던 사람들, 그렇게 끝까지 함께 하겠다던 사람들이 뒤돌아서서 등을 찌르는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미리 다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우리를 구원한다고 해도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아픔, 우리의 슬픔, 우리의 서러움, 우리의 질병을 대신 지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당할 모든 아픔을 대신 당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그 삶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혹시 여러분 가운데 아픔이 있고 슬픔, 서러움이 있는 사람들은 그 모든 짐을 다 예수님께 넘기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혹시 여러분이 이기지 못하는 질병이 있으면 내가 대신 지겠다고 하시는 예수님께 그 질병을 벗어 넘기십시오. 혹시 괴로움이 있고 속상함이 있고 죽을 것만 같은 아픔이 있으면 그 모든 것을 다 벗어서 예수님께 넘기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이제 눈물을 거두고 웃으십시오. 여러분들은 평화를 누리십시오. 예수님께서 그것을 대신 다 지신 까닭은 여러분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가장 정확하게 예언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
왜 그렇게 초라한 모습을 하셨을까요? 혹시 여러분 가운데 스스로 나는 초라하고 못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의 그 아픔을 대신 지시기 위해서 그렇게 태어나시고 그런 모습으로 사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또 3절에서는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 귀히 여김을 받지 못하시는 분들, 여러 고통을 당하시는 분들, 멸시를 당하시는 분들, 외면당하는 분들이 있으면 이제 그 아픔을 예수님께 다 넘기십시오. 더 이상 아픔을 당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다 가지고 가십니다.
이어지는 4절에서는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병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 짊어지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짐은 다 털어버리십시오. 아픔과 질병을 다 털어버리고 예수님께 넘기십시오. 예수님은 조금도 부담스러워하지 아니하시고 여러분의 모든 아픔과 질병과 고통과 서러움을 기꺼이 또 기쁨으로 받으실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께서 찔리시고 상하시고 징계받으시고 채찍 받으시고 배신당하신 것이 다 우리를 위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혹시라도 여러분이 죄지은 것이 있으면 그 죄까지도 예수님께서 다 지십니다. 여러분이 실패하고 실수하신 것까지도 예수님께서 다 담당하십니다. 이제 여러분은 홀가분하게 서십시오.
우리를 낫게하기 위해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순결하도록 하기 위해서, 평화를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눈물의 왕으로 오시고 눈물로 이 세상을 사셨습니다. 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예수님께서 순종하신 것 때문입니다. 이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6절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천사들이 확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14절 말씀을 보실 때 조금 관심을 가지고 깊이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사람들이 예수님 때문에 평화를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평화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완결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에게는 평화가 되고 영광이 될 수가 있지만 하나님께는 영광이 아닙니다. 아픔이고 슬픔이고 괴로움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못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는 아주 분명하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 당신께서 ‘나에게 영광’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주 귀중한 말씀을 하십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을 그 어두운 땅에 보내서 십자가에 죽음을 죽게 하는 것은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아픔이고 그 무엇으로 대신할 수 없는 슬픔이다. 그러나 나의 그 아픔과 슬픔, 그 고통을 완전하게 뛰어넘도록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내 아들이 십자가에 죽는 그것이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기독교 신자들에게 대단히 큰 계시를 주십니다. 하나는, 우리가 평화를 만드는 것은 하나님께 어마어마한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크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 없을 정도로 신자들이 평화를 만드는 것은 하나님께 소중한 일이고 기쁜 일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우리가 평화를 이룰 때 하나님은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받으신 영광을 나누어주신다는 놀라운 계시가 여기에 숨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복, 행복입니다. 평화입니다. 우리가 평화를 만들 때 하나님께서 한없이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에게는 행복을 주시고 평화를 주시고 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 살면서 부디 평화를 이루십시오.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십시오. 먼저 여러분들이 평화를 누리십시오. 여러분들이 평화를 누리고 소유해야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전하십시오. 이것이 평화를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전할 때 평화이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나누어주십니다.
평화의 일을 하십시오. 평화를 이루십시오. 주머니를 여시고 손을 펴십시오. 따뜻한 손길을 펴십시오. 가난하고 불쌍하고 외로운 사람,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 어려운 사람, 병든 사람, 나그네,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에게 주머니를 열고 손길을 펴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이 평화로워지고 이 세상이 평화로워집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살면 주님께서 반드시 갚아주십니다. 본전만 갚아주시는 것이 아니라 대단하고 놀라운 것으로 갚아주십니다.♥
[생각해 봅시다]
1. 우리에게 평화가 되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하루에 얼마나 생각하나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누리는 평화가 내 모든 삶에서 충만하게 경험되어 지나요?
2. 내가 받은 평화를 친구, 이웃, 모르는 이들에게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드나요? 그 마음을 어떻게 행동으로 옮겨 볼 수 있을지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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