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메일
신명기(7) - 신명기 8: 1~10
2013-09-15 11:52:58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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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7)
신명기 8: 1~10═════════════════════
추석이 지나면 배앓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날씨가 좀 좋아졌다고 음식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서 음식이 상해서 그럴 수 있고 또 하나는 추석절에 음식이 얼마나 많고 맛있습니까? 이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다가 소화불량이 걸린 것입니다. 상한 음식 때문에 소화가 되지 않는 소화불량, 많이 먹어서 소화가 되지 않는 소화불량, 이런 소화불량에 걸린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소화불량증은 음식 소화불량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소화불량증도 있습니다. 음식 소화불량증은 한 개인의 고통으로 끝나지만 역사 소화불량증은 그 피해가 큽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가나안 바로 앞에 도착해서 이제 가나안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통해서 또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이 신명기 일곱 번째인데 이미 수차례 하신 그 말씀을 또 되풀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1절) 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같은 말씀을 되풀이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역사 소화불량증이 있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가르쳐도 그 가르친 것을 소화시키지 못해서 또 다시 들려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 존재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일마다 여러분을 부르시는 까닭, 한국교회에서는 새벽마다 또 수요일에 여러분을 부르시는 까닭도 바로 이런 것입니다. 깜빡하면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에서 여러분을 더 많이 부르시는 까닭은 한국교회는 교회 바깥으로 나가면 하나님과 거의 관계없는 문화들로 가득 차 있으므로 예배당 안에서는 잘 깨닫고 잘 기억할 것 같던 말씀을 또 잊어버리고 또 소화불량증에 걸려 고통을 받고 앓는 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 소화불량증이 걸리면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정이 역사 소화불량증이 걸리면 그 가정은 늘 같은 일로 고통을 당합니다. 자녀들과의 문제, 부부사이의 문제 다 그렇습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짧은 근대 역사를 보면 늘 같은 일들이 되풀이 됩니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정권이 바뀌고 여야가 바뀌어도 똑 같은 일이 되풀이됩니다. 한국교회의 역사가 백년인데 그 백년 역사를 보면 똑같습니다. 세계 기독교도 마찬가지로 2,000년 역사 동안 똑같이 소화불량증 때문에 고통을 앓습니다.
출애굽 1세대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멸망한 이유가 그것입니다. 옛날에도 당했는데 똑같은 일로 또 당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세대는 다 광야에서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한 세대가 지나가는 시간이 40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도록 되어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가만히만 있어도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다. 이스라엘이나 오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복을 받지 못하는 까닭은 바르게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순종하면 됩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사람들이 복을 받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밀리고 처지고 당하는 까닭이 바르게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 기독교의 백 년 전의 역사 그리고 백년 어간의 역사를 한 번 보십시오. 백 년 전에 어떠했습니까? 한국 기독교가 한국이라는 나라를 이끌어갔습니다. 나라의 중요 지도자들이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때로 목사님의 말씀이 조금 말이 안 되는 것 같아도 ‘아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성도들이 마치 무식하고 모자라는 사람처럼 그냥 받아들였습니다. 요즘은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온전한 순종을 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희한하게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 배운 사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이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오히려 손가락질을 받고 존경을 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잘못 똑똑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아시기 때문에 계속해서 되풀이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모든 의미에서 복을 받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밀리고 처지고 이기지 못합니다. 옛날에 순진하게 순종할 때는 이겼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면 넘어지는 사람은 일어서지 못합니다. 순종하면 넘어지고 실수하고 실패해도 일어설 수 있지만 순종하지 않하면 일어서지 못하고 회복하지 못하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도 누리지 못하고 결국은 가지고 있는 것도 다 잃어버립니다. 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순종하면 정 반대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무조건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이라고 순종하면 그렇다는 미신적인 가르침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전체를 보십시오. 하나님 말씀은 항상 옳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옳지만 세상에서도 옳습니다. 세상 사람들보다 더 정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바르게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옳은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세상에서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또 사십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들이 왜 방황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사십 년 동안 그렇게 혹독한 고생을 하고 비참한 인생을 산 까닭을 말씀하십니다. 가기로 예정되어있었던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를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는 낮추시며’..
겸손하게 하기 위해서 그 고생을 시키신 것이라는 말씀하십니다. 이때 겸손하고 낮추는 것에 대해서 이해를 잘 하십시오. 사람에게 겸손하고 사람에게 낮추는 것을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참 좋은 일이지만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나를 낮추고 겸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나는 무능한 사람이다, 하나님 말씀은 항상 옳고 하나님 말씀과 어긋나는 내 모든 생각은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나를 낮추는 것이고 겸손하는 것입니다.
내가 살 길은, 여기서 산다는 것은 숨 쉬고 밥 먹고 살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이 힘든 세상에서 넉넉하게 승리하고 이 복잡한 세상을 넉넉하게 해쳐나가는 것입니다, 나만 해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이끌고 도와줄 수 있으면서 살 길은, 하나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길뿐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나를 낮추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상당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기만 하면 한없이 작은 사람이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깨닫는 것, 이것이 바로 낮은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돈도 많고 지위도 높고 명예도 더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만 서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나를 낮추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받은 고통과 불행의 결정적인 원인은 스스로 높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잘 따랐습니다. 그런데 먹고 살만하고 이제 되었다 싶으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판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보아도 아닌 것 같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다가는 우리가 잘못될 것 같다, 망할 것 같다..’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판단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높아졌습니다. 이것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방황하고 한 세대가 광야에서 다 죽어갔습니다.
우리 스스로 낮추어야합니다. 자꾸 낮추어야합니다. 한없이 낮추어야합니다. 우리 인간 존재는 한 번 낮아졌다고 그냥 낮은 존재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속성과 본능 자체가 자꾸 높아지려고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우리를 낮추어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그저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는 ‘너를 시험하사’(2절) 라고 말씀하십니다. 테스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이 아직도 교만한지 아니면 이제는 철이 들어서 겸손하게 되었는지 이것을 시험하기 위해서 낮추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고생을 좀 했으니 이제는 순종할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도 또 지금까지처럼 불순종해서 그런 일을 또 당할 것인지 테스트를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고생을 시키셨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하시는 중대한 원리, 진리를 하나 추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낮아질수록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손할수록,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할수록 고통과 환난은 우리에게서 멀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쓰라린 아픔도 서러운 일들도 순종하기만 하면 우리와 관계없는 일이 된다는 놀라운 지혜를 이 말씀에서 추출할 수 있습니다.
인생살이에서 열매 없는 헛된 세월이라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비참한 일인지 아십니까? 내 생명을 다해서 자식을 키웠는데 그 자식이 열매 없는 자식이 되었다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내 건강을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했는데 내가 바라던 그 건강을 찾지 못하고 내 가정을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그런 가정이 되지 못하는 이런 열매 없는 세월이 되었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고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그러나 우리가 순종하기만 하면 이런 것은 우리와 관계없는 아주 먼 것이 된다는 진리를 이 말씀에서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 진리를 알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것이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3절) 라고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주리게 하시는 것은 밥을 못 먹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아주 어렵게 하는 것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낮추시는 것과 주리는 것,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이라는 이 세 번째 말씀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합니다. 여러분도 만나는 다 기적이라고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광야에서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었을 때 아침마다 만나가 내려오면 그것을 그냥 먹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놀라운 일이고 기적입니까? 그러나, 만약에, 먹을 것이 있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만나를 선택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개떡을 아십니까? 겨로 만든 떡을 개떡이라고 합니다. 생긴 것도 별로 예쁘지 않습니다. 요즘은 기술을 다해 맛있는 것을 많이 넣었지만 그래도 개떡은 별로 맛이 없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무척 맛있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간식으로 먹을 만한 다른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이것이라도 먹는 것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만나가 그런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것이 좋다고 감사하겠습니까?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당시 큰 고생을 하고 힘든 인생을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인생을 살게 한 까닭이 바로 그 진리를 알게 하기 위함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신 까닭에 대해서 3절에서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길, 그저 숨 쉬고 겨우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 경쟁해서 승리하고 넉넉하게 우리 자녀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되고 내가 더 건강하고 가정이 더 화목하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먹는 것, 건강, 사업, 자녀들 문제 등 모든 문제들이 다 우리가 순종할 때 우리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그런 것을 위해서 우리 또한 최대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자녀들을 위해서 노력해야하고 건강을 위해서 노력해야하고 사업을 위해서 노력해야합니다. 가정을 위해서도 노력해야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에 있어서 결정적인 관건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십니다.
이 말씀에 대한 증거를 4절에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느끼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단하게 잘 해주셨다는 것으로 들리십니까? 겨우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자랑삼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들은 복이 이것밖에 없어서 이것밖에 받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까지만 하나님이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든지 더 받을 수 있는데도 이것밖에 받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했습니다. 지난번에는 순종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순종을 했습니까? 혹시라도 순종하지 않으면 내일 아침에 만나가 내려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어쩔 수 없이 한 순종입니다. 기뻐서 순종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주어야할 만큼만 주신 것입니다. 만약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그리고 참되게 전적으로 순종했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챙기시겠는지 말씀하시는 것이 위 4절 말씀입니다.
순종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순종이 있습니다. 이것은 달갑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렇고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참된 순종이 있습니다. 기꺼이 하는 순종, 기뻐서 하는 순종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설명을 5절에서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사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조금만 성장하면 부모님께서 왜 이렇게 야단치시는지, 왜 내가 달라고 하는 것을 주지 않으시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도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내가 더 잘되도록 하기 위해서 또 내가 잘못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시는 것이라고 사랑으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이것을 요구하십니다. 부모가 여러분들을 대하듯이 사랑 때문에 여러분을 징계하고 주지 않듯이 나도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는 모든 것, 여러분에게 부탁하는 것, 책망하는 것, 징계하는 것 전부다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전적으로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복을 받습니다. 부모님께서 하시는 일을 마음으로 다 받아들이는 이런 사람들이 꼭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좀 아니다 싶어도, 조금 손해본다싶어도 순종하는 사람들이 복을 받습니다.
11절에서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라고 계속해서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얼마나 안타까우시면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이렇게 계속하시겠습니까?
11절 말씀 가운데 기억할 말씀이 있습니다. 마지막에 ‘삼갈지어다’ 라는 말씀입니다.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조심해야합니다. 아차하면 실패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전에 아차해서 실패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회복해서 일어서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 실패 때문에 일어서지 못한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항상 이런 가능성, 이런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 전의 수많은 세상의 선배, 믿음의 선배들이 그렇습니다. 잘하다가도 아차 하는 실수로 큰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특별히 신경 쓰고 조심해야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12절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12-13절)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여기가 함정입니다. 무엇을 이루었을 때입니다. 경제적으로 무엇을 이루었을 때, 건강을 회복했을 때, 일이 잘 되었을 때, 사업이 잘 되었을 때, 부를 많이 모았을 때 이때 신자들은 정말로 조심해야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때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넘어져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 잃어버렸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특별히 환기시키는 단어가 있습니다. 14절 ‘네 마음이 교만하여’ 라고 말씀하십니다. 교만입니다. 어떤 교만입니까? 참 중요한 말씀인데 여기에 대해서 17절에서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내가 된 것은, 내가 일어선 것은, 내가 성공한 것은, 내가 잘 된 것은, 하나님이라는 말을 걸지 않으면 좀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은혜!’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내가 잘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거기다 더 못된 사람들은 오히려 은근히 속으로 ‘내가 힘들게 공부할 때 부모님이 나를 도와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내가 사업한다고 도와달라고 할 때 안 도와주지 않았습니까?’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내가 그렇게 어려워 간절하게 기도할 때 왜 도와주지 않으셨습니까?’ 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오늘 이룬 것은 하나님과 관계없다는 말씀입니다.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추석명절을 당해서 아버지 묘소를 찾아갔습니다. 거기서 절을 하고 난 뒤 ‘아버님, 이번 한 번만 도와주시면 내년에는 정종과 대구포를 사가지고 오겠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옛날에는 정종과 대구포가 귀했습니다. 그런데 그 해 일이 잘 안되었습니다. 그 다음해 묘소를 찾아가서 ‘대구포 좋아하시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실제로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해서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얘야, 그것이 아니다. 내가 너를 왜 도와주지 않았느냐? 내가 왜 너를 힘들게 했느냐? 그렇게 하면 너가 잘못 되기 때문이다, 너를 잘 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16절에서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의 마음하고 똑같습니다. 자식이 미워서 고생시키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이 그렇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네가 살아온 것도, 이전에 네가 부도나서 고생한 그것도 다 내가 그렇게 한 것이다. 네가 잘 살아온 것도 다 내가 준 것이다, 너는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나마 그 공부도 내가 시켜준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18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덜 주신 것이 있다면 여러분을 생각해서 아직 덜 주셨을 뿐입니다. 주실만하면 얼마든지 주십니다. 여러분이 소원하는 것보다, 여러분들이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것, 더 많은 것을 주십니다.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은 계속해서 여러분을 쳐다보십니다. 계속해서 저울에 달아보고 계십니다. 중량이 제대로 되었는지, 크기가 제대로 되었는지 사이즈를 재고 계십니다. 복을 누릴만한 사람인지, 그럴만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지 계속해서 보고 계십니다. 그러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고 되었다 싶으면 벌떡 일어서셔서 복을 주십니다. 좋은 것을 주십니다. 한 번 주고 마는 것이 아니라 주시고 더 주십니다. 계속해서 주십니다. 그러나 안 되겠다고 판단하시면 더 이상 주시지 않습니다. 이미 주신 것도 빼앗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더 망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빼앗아야지 덜 망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멸망이라는 말씀으로 표현합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라..’(19-20절) 멸망한 까닭이 순종하지 아니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확인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판단하는 핵심적인 요소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사랑하지 않는가? 하나님께 순종하는가, 순종하지 않는가? 여기에 달려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늘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때에서도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하나님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을 생각하시고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할 수만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십시오. 그것이 여러분들의 행복이고 여러분들의 복입니다. 그리고 그 행복과 복은 여러분들에게서 그치지 아니하고 사랑하는 딸 아들에게도 미치게 됩니다. ♥
신명기 8: 1~10═════════════════════
추석이 지나면 배앓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날씨가 좀 좋아졌다고 음식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서 음식이 상해서 그럴 수 있고 또 하나는 추석절에 음식이 얼마나 많고 맛있습니까? 이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다가 소화불량이 걸린 것입니다. 상한 음식 때문에 소화가 되지 않는 소화불량, 많이 먹어서 소화가 되지 않는 소화불량, 이런 소화불량에 걸린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소화불량증은 음식 소화불량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소화불량증도 있습니다. 음식 소화불량증은 한 개인의 고통으로 끝나지만 역사 소화불량증은 그 피해가 큽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가나안 바로 앞에 도착해서 이제 가나안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통해서 또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이 신명기 일곱 번째인데 이미 수차례 하신 그 말씀을 또 되풀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1절) 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같은 말씀을 되풀이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역사 소화불량증이 있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가르쳐도 그 가르친 것을 소화시키지 못해서 또 다시 들려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 존재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일마다 여러분을 부르시는 까닭, 한국교회에서는 새벽마다 또 수요일에 여러분을 부르시는 까닭도 바로 이런 것입니다. 깜빡하면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에서 여러분을 더 많이 부르시는 까닭은 한국교회는 교회 바깥으로 나가면 하나님과 거의 관계없는 문화들로 가득 차 있으므로 예배당 안에서는 잘 깨닫고 잘 기억할 것 같던 말씀을 또 잊어버리고 또 소화불량증에 걸려 고통을 받고 앓는 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 소화불량증이 걸리면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정이 역사 소화불량증이 걸리면 그 가정은 늘 같은 일로 고통을 당합니다. 자녀들과의 문제, 부부사이의 문제 다 그렇습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짧은 근대 역사를 보면 늘 같은 일들이 되풀이 됩니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정권이 바뀌고 여야가 바뀌어도 똑 같은 일이 되풀이됩니다. 한국교회의 역사가 백년인데 그 백년 역사를 보면 똑같습니다. 세계 기독교도 마찬가지로 2,000년 역사 동안 똑같이 소화불량증 때문에 고통을 앓습니다.
출애굽 1세대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멸망한 이유가 그것입니다. 옛날에도 당했는데 똑같은 일로 또 당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세대는 다 광야에서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한 세대가 지나가는 시간이 40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도록 되어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가만히만 있어도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다. 이스라엘이나 오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복을 받지 못하는 까닭은 바르게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순종하면 됩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사람들이 복을 받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밀리고 처지고 당하는 까닭이 바르게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 기독교의 백 년 전의 역사 그리고 백년 어간의 역사를 한 번 보십시오. 백 년 전에 어떠했습니까? 한국 기독교가 한국이라는 나라를 이끌어갔습니다. 나라의 중요 지도자들이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때로 목사님의 말씀이 조금 말이 안 되는 것 같아도 ‘아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성도들이 마치 무식하고 모자라는 사람처럼 그냥 받아들였습니다. 요즘은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온전한 순종을 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희한하게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 배운 사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이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오히려 손가락질을 받고 존경을 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잘못 똑똑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아시기 때문에 계속해서 되풀이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모든 의미에서 복을 받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밀리고 처지고 이기지 못합니다. 옛날에 순진하게 순종할 때는 이겼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면 넘어지는 사람은 일어서지 못합니다. 순종하면 넘어지고 실수하고 실패해도 일어설 수 있지만 순종하지 않하면 일어서지 못하고 회복하지 못하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도 누리지 못하고 결국은 가지고 있는 것도 다 잃어버립니다. 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순종하면 정 반대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무조건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이라고 순종하면 그렇다는 미신적인 가르침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전체를 보십시오. 하나님 말씀은 항상 옳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옳지만 세상에서도 옳습니다. 세상 사람들보다 더 정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바르게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옳은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세상에서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또 사십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들이 왜 방황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사십 년 동안 그렇게 혹독한 고생을 하고 비참한 인생을 산 까닭을 말씀하십니다. 가기로 예정되어있었던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를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는 낮추시며’..
겸손하게 하기 위해서 그 고생을 시키신 것이라는 말씀하십니다. 이때 겸손하고 낮추는 것에 대해서 이해를 잘 하십시오. 사람에게 겸손하고 사람에게 낮추는 것을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참 좋은 일이지만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나를 낮추고 겸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나는 무능한 사람이다, 하나님 말씀은 항상 옳고 하나님 말씀과 어긋나는 내 모든 생각은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나를 낮추는 것이고 겸손하는 것입니다.
내가 살 길은, 여기서 산다는 것은 숨 쉬고 밥 먹고 살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이 힘든 세상에서 넉넉하게 승리하고 이 복잡한 세상을 넉넉하게 해쳐나가는 것입니다, 나만 해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이끌고 도와줄 수 있으면서 살 길은, 하나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길뿐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나를 낮추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상당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기만 하면 한없이 작은 사람이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깨닫는 것, 이것이 바로 낮은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돈도 많고 지위도 높고 명예도 더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만 서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나를 낮추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받은 고통과 불행의 결정적인 원인은 스스로 높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잘 따랐습니다. 그런데 먹고 살만하고 이제 되었다 싶으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판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보아도 아닌 것 같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다가는 우리가 잘못될 것 같다, 망할 것 같다..’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판단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높아졌습니다. 이것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방황하고 한 세대가 광야에서 다 죽어갔습니다.
우리 스스로 낮추어야합니다. 자꾸 낮추어야합니다. 한없이 낮추어야합니다. 우리 인간 존재는 한 번 낮아졌다고 그냥 낮은 존재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속성과 본능 자체가 자꾸 높아지려고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우리를 낮추어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그저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는 ‘너를 시험하사’(2절) 라고 말씀하십니다. 테스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이 아직도 교만한지 아니면 이제는 철이 들어서 겸손하게 되었는지 이것을 시험하기 위해서 낮추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고생을 좀 했으니 이제는 순종할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도 또 지금까지처럼 불순종해서 그런 일을 또 당할 것인지 테스트를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고생을 시키셨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하시는 중대한 원리, 진리를 하나 추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낮아질수록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손할수록,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할수록 고통과 환난은 우리에게서 멀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쓰라린 아픔도 서러운 일들도 순종하기만 하면 우리와 관계없는 일이 된다는 놀라운 지혜를 이 말씀에서 추출할 수 있습니다.
인생살이에서 열매 없는 헛된 세월이라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비참한 일인지 아십니까? 내 생명을 다해서 자식을 키웠는데 그 자식이 열매 없는 자식이 되었다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내 건강을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했는데 내가 바라던 그 건강을 찾지 못하고 내 가정을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그런 가정이 되지 못하는 이런 열매 없는 세월이 되었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고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그러나 우리가 순종하기만 하면 이런 것은 우리와 관계없는 아주 먼 것이 된다는 진리를 이 말씀에서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 진리를 알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것이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3절) 라고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주리게 하시는 것은 밥을 못 먹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아주 어렵게 하는 것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낮추시는 것과 주리는 것,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이라는 이 세 번째 말씀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합니다. 여러분도 만나는 다 기적이라고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광야에서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었을 때 아침마다 만나가 내려오면 그것을 그냥 먹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놀라운 일이고 기적입니까? 그러나, 만약에, 먹을 것이 있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만나를 선택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개떡을 아십니까? 겨로 만든 떡을 개떡이라고 합니다. 생긴 것도 별로 예쁘지 않습니다. 요즘은 기술을 다해 맛있는 것을 많이 넣었지만 그래도 개떡은 별로 맛이 없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무척 맛있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간식으로 먹을 만한 다른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이것이라도 먹는 것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만나가 그런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것이 좋다고 감사하겠습니까?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당시 큰 고생을 하고 힘든 인생을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인생을 살게 한 까닭이 바로 그 진리를 알게 하기 위함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신 까닭에 대해서 3절에서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길, 그저 숨 쉬고 겨우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 경쟁해서 승리하고 넉넉하게 우리 자녀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되고 내가 더 건강하고 가정이 더 화목하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먹는 것, 건강, 사업, 자녀들 문제 등 모든 문제들이 다 우리가 순종할 때 우리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그런 것을 위해서 우리 또한 최대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자녀들을 위해서 노력해야하고 건강을 위해서 노력해야하고 사업을 위해서 노력해야합니다. 가정을 위해서도 노력해야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에 있어서 결정적인 관건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십니다.
이 말씀에 대한 증거를 4절에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느끼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단하게 잘 해주셨다는 것으로 들리십니까? 겨우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자랑삼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들은 복이 이것밖에 없어서 이것밖에 받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까지만 하나님이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든지 더 받을 수 있는데도 이것밖에 받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했습니다. 지난번에는 순종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순종을 했습니까? 혹시라도 순종하지 않으면 내일 아침에 만나가 내려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어쩔 수 없이 한 순종입니다. 기뻐서 순종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주어야할 만큼만 주신 것입니다. 만약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그리고 참되게 전적으로 순종했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챙기시겠는지 말씀하시는 것이 위 4절 말씀입니다.
순종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순종이 있습니다. 이것은 달갑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렇고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참된 순종이 있습니다. 기꺼이 하는 순종, 기뻐서 하는 순종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설명을 5절에서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사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조금만 성장하면 부모님께서 왜 이렇게 야단치시는지, 왜 내가 달라고 하는 것을 주지 않으시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도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내가 더 잘되도록 하기 위해서 또 내가 잘못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시는 것이라고 사랑으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이것을 요구하십니다. 부모가 여러분들을 대하듯이 사랑 때문에 여러분을 징계하고 주지 않듯이 나도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는 모든 것, 여러분에게 부탁하는 것, 책망하는 것, 징계하는 것 전부다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전적으로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복을 받습니다. 부모님께서 하시는 일을 마음으로 다 받아들이는 이런 사람들이 꼭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좀 아니다 싶어도, 조금 손해본다싶어도 순종하는 사람들이 복을 받습니다.
11절에서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라고 계속해서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얼마나 안타까우시면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이렇게 계속하시겠습니까?
11절 말씀 가운데 기억할 말씀이 있습니다. 마지막에 ‘삼갈지어다’ 라는 말씀입니다.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조심해야합니다. 아차하면 실패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전에 아차해서 실패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회복해서 일어서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 실패 때문에 일어서지 못한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항상 이런 가능성, 이런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 전의 수많은 세상의 선배, 믿음의 선배들이 그렇습니다. 잘하다가도 아차 하는 실수로 큰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특별히 신경 쓰고 조심해야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12절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12-13절)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여기가 함정입니다. 무엇을 이루었을 때입니다. 경제적으로 무엇을 이루었을 때, 건강을 회복했을 때, 일이 잘 되었을 때, 사업이 잘 되었을 때, 부를 많이 모았을 때 이때 신자들은 정말로 조심해야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때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넘어져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 잃어버렸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특별히 환기시키는 단어가 있습니다. 14절 ‘네 마음이 교만하여’ 라고 말씀하십니다. 교만입니다. 어떤 교만입니까? 참 중요한 말씀인데 여기에 대해서 17절에서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내가 된 것은, 내가 일어선 것은, 내가 성공한 것은, 내가 잘 된 것은, 하나님이라는 말을 걸지 않으면 좀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은혜!’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내가 잘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거기다 더 못된 사람들은 오히려 은근히 속으로 ‘내가 힘들게 공부할 때 부모님이 나를 도와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내가 사업한다고 도와달라고 할 때 안 도와주지 않았습니까?’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내가 그렇게 어려워 간절하게 기도할 때 왜 도와주지 않으셨습니까?’ 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오늘 이룬 것은 하나님과 관계없다는 말씀입니다.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추석명절을 당해서 아버지 묘소를 찾아갔습니다. 거기서 절을 하고 난 뒤 ‘아버님, 이번 한 번만 도와주시면 내년에는 정종과 대구포를 사가지고 오겠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옛날에는 정종과 대구포가 귀했습니다. 그런데 그 해 일이 잘 안되었습니다. 그 다음해 묘소를 찾아가서 ‘대구포 좋아하시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실제로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해서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얘야, 그것이 아니다. 내가 너를 왜 도와주지 않았느냐? 내가 왜 너를 힘들게 했느냐? 그렇게 하면 너가 잘못 되기 때문이다, 너를 잘 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16절에서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의 마음하고 똑같습니다. 자식이 미워서 고생시키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이 그렇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네가 살아온 것도, 이전에 네가 부도나서 고생한 그것도 다 내가 그렇게 한 것이다. 네가 잘 살아온 것도 다 내가 준 것이다, 너는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나마 그 공부도 내가 시켜준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18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덜 주신 것이 있다면 여러분을 생각해서 아직 덜 주셨을 뿐입니다. 주실만하면 얼마든지 주십니다. 여러분이 소원하는 것보다, 여러분들이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것, 더 많은 것을 주십니다.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은 계속해서 여러분을 쳐다보십니다. 계속해서 저울에 달아보고 계십니다. 중량이 제대로 되었는지, 크기가 제대로 되었는지 사이즈를 재고 계십니다. 복을 누릴만한 사람인지, 그럴만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지 계속해서 보고 계십니다. 그러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고 되었다 싶으면 벌떡 일어서셔서 복을 주십니다. 좋은 것을 주십니다. 한 번 주고 마는 것이 아니라 주시고 더 주십니다. 계속해서 주십니다. 그러나 안 되겠다고 판단하시면 더 이상 주시지 않습니다. 이미 주신 것도 빼앗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더 망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빼앗아야지 덜 망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멸망이라는 말씀으로 표현합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라..’(19-20절) 멸망한 까닭이 순종하지 아니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확인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판단하는 핵심적인 요소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사랑하지 않는가? 하나님께 순종하는가, 순종하지 않는가? 여기에 달려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늘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때에서도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하나님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을 생각하시고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할 수만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십시오. 그것이 여러분들의 행복이고 여러분들의 복입니다. 그리고 그 행복과 복은 여러분들에게서 그치지 아니하고 사랑하는 딸 아들에게도 미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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